Highlights
최근 우리는 죽음이 기술적인 문제라고 재정의하였다. 매우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과학은 모든 기술적 문제에 모종의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세상에 독립국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행성은 여전히 2백여 개의 각기 다른 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모든 국가가 동일하게 전 지구적인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힘에 의존하고 있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바다로 나간 다른 포유동물, 즉 바다표범, 바다소, 돌고래 등은 전문화된 장기와 유체역학적 신체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오랜 기간 진화해야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초원에 살던 유인원의 후손인 사피엔스는 물갈퀴를 길러내거나 고래처럼 코가 머리 꼭대기로 올라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태평양의 해상여행자가 되었다. 그 대신 그들은 배를 건조하고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이런 기술 덕분에 호주까지 가서 정착할 수 있었다.
바다의 대형동물들은 육지의 대형동물들에 비해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의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종이 산업공해와 인간의 해양자원 남용 탓에 멸종의 기로에 서 있다. 사태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고래, 상어, 참치, 돌고래는 디프로토돈, 땅나무늘보, 매머드의 선례를 따라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어느 종이 성공적으로 진화했느냐의 여부는 굶주림이나 고통의 정도가 아니라 DNA 이중나선 복사본의 개수로 결정된다. 한 회사의 경제적 성공은 직원들의 행복이 아니라 오직 은행잔고의 액수로만 측정된다. 마찬가지로 한 종의 진화적 성공은 그 DNA의 복사본 개수로 측정된다. 만일 더 이상의 DNA 복사본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 종은 멸종한 것이다.
지난 몇십 년간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는 기계를 무수히 발명했다. 세탁기, 진공청소기, 식기세척기, 전화, 휴대전화, 컴퓨터, 이메일…… 이들 기계는 삶을 더 여유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과거엔 편지를 쓰고 주소를 적고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에 가져가는 데 몇 날 몇 주가 걸렸다. 답장을 받는 데는 며칠, 몇 주, 심지어 몇 개월이 걸렸다. 요즘 나는 이메일을 휘갈겨 쓰고 지구 반대편으로 전송한 다음 몇 분 후에 답장을 받을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수고와 시간을 절약했다. 하지만 내가 좀 더 느긋한 삶을 살고 있는가?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창조’되지 않았다. 진화했다. 또한 ‘평등’하게 진화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평등사상은 창조사상과 뗄 수 없게 얽혀 있다. 미국인들은 평등사상을 기독교 신앙에서 얻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은 신이 창조했으며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신앙 말이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신과 창조와 영혼에 관한 기독교 신화를 믿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란 사악한 음모도 무의미한 환상도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볼테르는 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하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는 마라. 그가 밤에 날 죽일지 모르니까.
자연의 질서는 안정된 질서다. 설령 사람들이 중력을 믿지 않는다 해도 내일부터 중력이 작용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다. 이와 반대로 상상의 질서는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화에 기반하고 있고, 신화는 사람들이 신봉하지 않으면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상의 질서를 보호하려면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낭만주의는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향해 스스로를 활짝 열어야 하고, 다양한 관계들을 두루 맛보아야 하며, 평소와 다른 요리를 시식해봐야 하고, 다른 종류의 음악을 감상하는 법을 배우라고 말이다. 이 모두를 실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과 친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먼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화와 냄새와 취향과 규범을 ‘경험’해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우리는 “새로운 경험이 어떻게 나의 시야를 넓히고 내 인생을 바꾸었는가.” 하는 낭만주의적 신화를 되풀이해서 듣는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사람 중 많은 이가 노예 소유주였다. 이들은 서명과 동시에 노예를 해방하지 않았으며, 스스로를 위선자로 여기지도 않았다. 이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의 권리는 깜둥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게는 ‘맹종하는 본성’이 있고 자유민에게는 ‘자유로운 본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단순히 이들의 본성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자연스럽고 정당한 데 비해 다른 사회의 그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러운 기준을 근거로 삼는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여러분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사람들도 이런 낙인은 신화이지 사실이 아니며, 흑인들도 백인 못지않게 경쟁력 있고 법을 준수하며 청결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예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편견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굳어졌다. 좋은 직업은 모조리 백인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흑인들이 실제로 열등하다고 믿기가 더 쉬워졌다. 평균적인 백인 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고. 흑인이 해방된 지도 여러 세대가 지났어. 하지만 교수나 법률가나 의사가 된 흑인이 얼마나 되냐고. 심지어 은행 출납계원이 된 사람도 드물어. 이건 그들이 지능이 떨어지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 아닐까?” 흑인들은 악순환에 빠졌다. 그들은 지능이 떨어진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이미 백인들이 차지해버린 직업을 구할 수 없었는데, 그들이 열등하다는 증거는 백인들이 차지한 직업을 가진 흑인이 드물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부당한 차별은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심해질 수 있다. 돈은 돈 있는 자에게 들어오고, 가난은 가난뱅이를 방문하는 법이다. 교육은 교육받은 자에게, 무지는 무지한 자에게 돌아가게 마련이다. 역사에서 한번 희생자가 된 이들은 또다시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역사의 특권을 누린 계층은 또다시 특권을 누릴 가능성이 크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거의 출생 직후부터 길들여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특정한 기준에 맞게 처신하며, 특정한 것을 원하고, 특정한 규칙을 준수하도록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수백만 명이 효과적으로 협력할 수 있게 해주는 인공적 본능을 창조했다. 이런 인공적 본능의 네트워크가 바로 ‘문화’다.
우리는 여전히 ‘고유’ 문화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만일 그 ‘고유성’이란 것이 독자적으로 발달한 무엇,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의 지역전통으로 구성된 것을 뜻한다면, 오늘날 지구상에는 고유 문화가 하나도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모든 문화는 홍수처럼 범람한 지구적 영향들에 의해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
호모 사피엔스는 사람을 우리와 그들로 나눠서 생각하도록 진화했다. ‘우리’란 누구든 내 바로 주위에 있는 집단을 말했다. ‘그들’이란 그 외의 모든 사람이었다. 사실 어떤 사회적 동물도 자신이 속한 종 전체의 이익에 이끌려 행동하지는 않는다. 침팬지 종의 이익에 관심을 갖는 침팬지는 한 마리도 없고, 지구적 달팽이 공동체를 위해 촉수 한 쪽이라도 까딱할 수고를 들일 달팽이는 없으며, 알파 수컷 사자들 중에 모든 사자의 왕이 되고자 나서는 놈도 없고, 벌집 입구에 “만국의 일벌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붙어 있는 경우도 없다.
옛 소련에서 시행되었지만, 비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원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다”던 것이 현실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일하고 가능한 한 최대로 받아낸다”로 바뀌었다.
하지만 주화가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화폐는 사용되었다. 금속이 아닌 다른 물건을 사용해서 번영한 문화는 많았다. 조가비, 가축, 가죽, 소금, 곡식, 구슬, 천, 약속어음……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약 4천 년간 화폐로 쓰였다. 20세기 초 영국령 우간다에서는 별보배고둥 껍데기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도 가능했다. 현대의 교도소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는 담배가 돈의 역할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인들도 담배를 지불수단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다른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담배로 계산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사용된 담배 화폐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화폐가 있었고 누구도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담배였다. 모든 물품의 가격은 담배로 제시되었다. ‘평상’시, 그러니까 가스실에 입장할 후보들이 정기적으로 계속 들어오는 기간에는 빵 한 덩이는 담배 열두 개비 값이었다. 3백 그램짜리 마가린 덩어리는 30개비, 시계는 80~2백 개비, 알코올 1리터는 4백 개비였다.
오늘날에도 주화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7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맨 처음에 화폐의 최초 버전이 만들어졌을 때는 사람들이 이런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지닌 물건을 ‘화폐’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역사상 최초의 화폐로 알려진 수메르인의 보리 화폐가 좋은 사례다. 이 화폐는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에서 글쓰기가 등장한 것과 똑같은 시기와 장소에, 또한 똑같은 상황에서 출현했다. 글쓰기가 행정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서 발달했던 것처럼, 보리 화폐는 경제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 발달했다. 보리 화폐는 그냥 보리였다. 다른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평가하고 교환하는 데 정해진 양의 보리를 보편적 척도로서 사용했던 것이다. 가장 흔한 단위는 실라였는데 대략 1리터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한 실라를 담을 수 있는 표준화된 그릇이 대량생산되어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필요한 양만큼의 보리를 쉽게 잴 수 있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했고, 각기 다른 통치자의 지배를 받았고, 각기 다른 신을 숭배했지만, 모두 금과 은, 금화와 은화를 신뢰했다. 이런 공통의 신념이 없었다면 세계 무역망은 사실상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지역이 일단 무역으로 연결되면, 운송가능한 물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힘에 의해 평준화되는 경향이 있다.
돈은 두 가지 보편적 원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 보편적 전환성 : 돈이 있으면 당신은 마치 연금술사처럼 땅을 충성심으로, 사법을 건강으로, 폭력을 지식으로 변환할 수 있다. 2. 보편적 신뢰 : 돈을 매개로 삼으면 임의의 두 사람은 어떤 프로젝트에도 협력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조각나 있지만, 국가들은 빠른 속도로 독립성을 잃고 있다. 어느 국가도 독자적인 경제정책을 실행하거나 마음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수행할 실질적 능력이 없다. 심지어 국내 문제도 자기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대로 운영할 수 없을 지경이다. 국가들은 글로벌 마켓의 책략에, 글로벌 회사와 글로벌 NGO의 간섭에, 글로벌 여론의 감독에, 국제 사법제도에 점점 더 문호를 열고 있다. 국가들은 재정적 행태, 환경 정책, 사법제도에서 글로벌 기준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매우 강력한 자본, 노동, 정보의 흐름이 세계를 바꾸고 그 모습을 새로이 형성하고 있다. 국가 간의 경계나 국가의 의견은 점점 더 무시되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형성되고 있는 지구제국은 특정 국가나 인종 집단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옛 로마 제국과 비슷하게 이 제국은 다인종 엘리트가 통치하며, 공통의 문화와 이익에 의해 지탱된다. 전 세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기업가, 엔지니어, 학자, 법률가, 경영인이 이 제국에 동참하라는 요청을 받고 있다. 이들은 제국의 부름에 응답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 국가와 민족에 충성을 바치며 남아 있을 것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제국을 선택하고 있다.
3세기에 걸친 모든 박해의 희생자를 다 합친다 해도,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후 1,500년간 기독교인은 사랑과 관용의 종교에 대한 조금 다른 해석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기독교인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이런 신학논쟁은 16~ 17세기에 매우 격렬해져서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는 수십만 명이나 서로 살해했다. 1572년 8월 24일, 선행을 강조하는 프랑스 가톨릭교도들은 하느님의 인간 사랑을 강조하는 프랑스 개신교 공동체를 공격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대학살로 불리는 이 공격에서 5천~1만 명의 개신교도가 살해되는 데는 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로마 교황은 프랑스에서 전해진 소식을 듣자 몹시 기뻐하며,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축하 기도회를 조직하고 조르조 바사리에게 명해 바티칸의 방 하나를 대학살에 대한 프레스코로 장식하게 했다(이 방은 현재 방문객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2 이 하루 동안 기독교인이 살해한 기독교인은 다신교를 믿는 로마 제국이 제국의 존속 기간을 통틀어 살해한 기독교인의 숫자보다 많았다.
기독교의 성공은 7세기 아라비아 반도에서 출현한 또 다른 일신교에 모델이 되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구석진 곳의 작은 분파로 시작했지만, 기독교보다 더 이상하고도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아라비아 사막을 벗어나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어머어마한 제국을 정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일신교 사상은 세계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종교가 다른 신앙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 신이 우주의 최고 권력이 아니든지, 그들이 신으로부터 우주의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전수받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일신론자들은 자신들이 단 한 분밖에 없는 신의 모든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2천 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학문 분과로서의 역사학이 지닌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특정 시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실현된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사후의 깨달음을 근거로, 어째서 그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이론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해당 시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은 경과를 훨씬 많이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level two’ 카오스계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계다. 날씨는 무수히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 게임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밈 연구 —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1620년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The New Instrument》 이라는 과학 선언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아는 것이 힘’이라고 주장했다. ‘지식’의 진정한 시금석은 그것이 진리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힘을 주느냐의 여부다.
세계 인구 70억 명 중에서 양자역학이나 세포생물학, 미시경제학을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럼에도 과학은 막대한 특권을 누린다. 그것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주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장군들은 핵물리학은 이해하지 못할지 몰라도 원자폭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안다.
체코의 아우스터리츠에서 유럽 연합군을 무찌른(1805년) 나폴레옹의 군대가 갖춘 무기는 루이 16세가 사용하던 것과 거의 동일했다. 나폴레옹은 포병이었음에도 신무기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과 발명가들이 비행기계, 잠수함, 로켓을 개발할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그를 설득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과학과 산업과 군사기술은 자본주의 체제와 산업혁명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서로 얽히기 시작했고, 일단 그 관계가 정립되자 세상은 급속히 변했다.
언젠가 구세주가 나타나서 세상의 전쟁과 기근과 심지어 죽음을 끝내리라고 믿는 신앙은 많았지만, 인류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고 새 도구를 발명함으로써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터무니없었다. 그것은 오만이었다. 바벨탑, 이카루스, 골렘 이야기를 비롯해 수많은 신화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망과 좌절을 부른다고 가르쳤다. 상황이 바뀐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근대 문화는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인정했다. 그런 무지의 인정이, 과학적 발견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과 결합하자, 사람들은 결국 진정한 진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짐작하기 시작했다.
역사를 통틀어 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난은 두 종류였다. 남들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가난 그리고 식량과 집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생물학적 가난이었다. 사회적 가난은 아마도 결코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생물학적 가난은 옛말이 되었다.
많은 문화권에서 번개는 분노한 신이 죄인을 처벌하기 위해서 때리는 망치로 여겨졌다. 18세기 중반, 과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 하나가 시행되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번개는 단지 전류에 불과하다는 가설을 실험하기 위해서 번개를 동반한 폭풍 속에서 연을 띄운 것이다. 프랭클린은 경험적 관찰과 전기 에너지의 속성에 대한 지식을 결합하여 피뢰침을 발명하고 신들을 무장해제시킬 수 있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질병과 노화의 원인이 되는 생리적, 호르몬적, 유전적 시스템을 연구하느라 바쁘다. 그들은 신약, 혁명적 치료법, 인공장기를 개발 중이며 언젠가는 죽음의 신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나노공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으로 구성된 생체공학적 면역계를 개발 중이다. 그 로봇들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막힌 혈관을 뚫고, 바이러스와 세균과 싸우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심지어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다.13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불멸은 아니다. 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외상을 당하지 않는 한 생명이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 전망한다.
1775년 아시아는 세계 경제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규모를 합친 것만으로도 세계 총생산의 3분의 2에 이르렀다. 이에 비해 유럽은 경제적 난쟁이였다.3 세계의 권력 중심이 유럽으로 이동한 것은 1750년에서 1850년 사이에 이르러서다. 이때 유럽인들은 일련의 전쟁에서 아시아 강대국들에게 모욕을 안기고, 그 영토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다. 1900년이 되자 유럽은 세계 경제와 대부분의 땅을 확고하게 지배했다.
어떻게 유라시아 변방에 있던 이들은 그 오지에서 뛰쳐나와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보통은 그 공의 큰 부분을 유럽 과학자들에게 돌린다.
아마추어 과학자였던 선장은 탐험 도중 만나게 될 지형을 연구하기 위해서 탐험대에 지리학자를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전문 지리학자 여러 명이 그의 초청을 거부하자, 선장은 케임브리지를 졸업한 22세의 찰스 다윈에게 이 업무를 제안했다. 다윈은 영국 국교회 성직자가 되기 위해 공부했으나, 성경보다는 지리학과 자연과학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두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그 이후는 알다시피 역사가 되었다. 선장이 군사 지도를 그리느라 시간을 보내는 동안 다윈은 실증적 자료를 수집하고 통찰력을 형성했으며, 이것이 종국에는 진화론으로 꽃피었다.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 착륙했다. 탐험에 앞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몇 개월간 달과 환경이 비슷한 미국 서부 사막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지역은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고향인데, 우주비행사들과 한 원주민과의 만남을 담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우주비행사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연히 마주쳤다. 남자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곧 떠날 원정대의 대원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원하세요?” 그들은 물었다. “우리 부족 사람들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산다고 믿는다오. 그들에게 우리 부족에서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당신들이 전해줄 수 있을까 해서.” “그 메시지가 뭔데요?” 우주비행사들이 물었다. 남자는 자기 부족의 언어로 뭐라고 말했고, 우주비행사들에게 그 말을 정확히 외울 때까지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게 시켰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우주비행사들은 물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이 말의 뜻은 우리 부족과 달의 정령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랍니다.” 기지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은 그 부족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통역할 사람을 찾아내어, 비밀 메시지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암기한 내용을 되뇌자 통역자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우주비행사들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통역자는 비행사들이 조심스럽게 암기한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1502년부터 1504년 사이, 그 탐험의 내용을 담은 두 건의 문서가 유럽에서 출간되었다. 저자는 베스푸치로 되어 있었다. 이들 문서의 주장에 따르면, 콜럼버스가 새로 발견한 섬들은 동아시아 연안의 섬들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대륙이었다. 성경이나 고전 지리학자나 동시대 유럽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1507년, 이런 주장을 확고하게 믿은 존경받는 지도 제작자 마르틴 발트제뮐러는 최신판 세계지도를 출간했는데, 그것은 유럽에서 서쪽으로 항해한 선단이 착륙했던 곳을 별개의 대륙으로 표시한 최초의 지도였다. 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 를 대표하게 하는 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회사는 이를 장악하기 위해 강 입구 섬에 뉴암스테르담이란 정착지를 건설했다. 식민지는 거듭해서 원주민들의 위협을 받고 되풀이해서 영국인의 공격을 받은 끝에, 결국 1664년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영국은 섬의 이름을 뉴욕으로 바꿨다. 네덜란드 서인도회사가 식민지를 원주민과 영국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웠던 성벽wall의 잔해 위에 깐 포장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즉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구두공이 자신이 낸 흑자를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이기적 탐욕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윤은 생산을 확대하고 사람을 더 많이 고용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구두공이 피고용인들의 월급을 깎고 근로시간은 늘리는 방법으로 이윤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리카 노예가 아메리카로 수입되었다. 이 중 약 70퍼센트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노동 환경은 끔찍했다. 대부분의 노예는 짧고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 외에도 노예를 포획하기 위한 전쟁이나 아프리카 내륙에서 아메리카 연안으로 노예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모두가 유럽인들이 달콤한 홍차와 캔디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설탕 농업의 거물들이 막대한 이윤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행된 일이었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거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농장주들이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행한 거의 모든 일은 근력을 바탕으로 했고, 그 근원은 식물이 포획한 태양에너지에 있었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는 두 가지 주요 주기의 지배를 받았는데, 식물의 성장 주기와 태양에너지의 변화 주기(낮과 밤, 여름과 겨울)였다.
인간의 모든 활동과 산업에서 매년 소비하는 양은 5백 엑사줄 가량으로,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90분간 받는 양에 불과하다.
화학자들이 알루미늄을 발견한 것은 1820년대였지만, 광석에서 이것을 분리해내기는 극도로 힘들었고 비용이 많이 들었다. 수십 년간 알루미늄은 금보다 더 비쌌다. 1860년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황제는 가장 신분이 높은 손님들 앞에는 알루미늄 식기를 놓으라고 지시했다. 그보다 신분이 떨어지는 사람들 앞에는 금으로 된 나이프와 포크가 놓였다.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 중심 종교에 의해 신성한 지위로 격상될 무렵, 농장 동물들은 더이상 고통과 비참함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간주되지 않았고 기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 동물은 공장 비슷한 시설에서 대량 생산되며, 몸체의 형태도 산업 수요에 맞게 형성된다. 거대한 생산라인의 톱니로서 전 생애를 보내며, 그 수명과 삶의 질은 해당 기업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결정된다. 산업이 동물들이 제법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도록 신경 쓰는 경우에도, 그들의 사회적, 심리적 욕구에는 본질적 흥미가 없다(생산량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경우는 예외다).
대서양 노예무역이 아프리카인을 향한 증오의 결과가 아니었던 것처럼, 현대의 동물산업도 악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그 연료는 무관심이다. 달걀과 우유와 고기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짬을 내어 자기가 살이나 그 산물을 먹고 있는 닭과 암소, 돼지를 생각하는 일이 드물다. 실제로 생각해본 사람들은 종종 그런 동물은 실제로 기계와 다를 것이 거의 없어 감정이나 느낌이 없고 고통을 느낄 능력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얄궂게도 우리의 우유 기계나 달걀 기계를 빚어내는 바로 그 과학 분야는 최근 포유류와 조류가 복잡한 감각과 감정적 기질을 지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을 증명해냈다. 육체적 통증을 느끼는 것은 물론, 정서적 고통도 느낀다는 것이다.
오늘날 농장에서 기계화된 조립 라인의 일부로 키워지는 가축의 숫자는 모두 수십억 마리에 이르며, 해마다 이 중 약 50억 마리가 도축된다. 이 같은 산업적 사육방법은 농업 생산량과 인류의 식재료 양을 급증시켰다. 기계화된 농작물 재배법과 산업적 가축사육법은 현대의 사회경제 질서의 기반이다. 농업이 산업화되기 전에 들판과 농장에서 생산된 식량의 대부분은 농부와 가축을 먹이느라 ‘낭비’되었고, 생산량 중 아주 낮은 비율만이 장인과 교사, 사제와 관료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결과 거의 모든 사회에서 농부가 차지하는 비율은 90퍼센트를 넘었다. 농업이 산업화되자, 적은 수의 농부로도 많은 사무원과 공장 노동자를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에서 농업으로 먹고사는 인구는 2퍼센트에 불과하다.9 하지만 이 2퍼센트가 미국 인구 전체를 먹이고 남은 것은 수출할 만큼 생산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값비싼 사치품에 돈을 흥청망청 썼지만, 농부들은 한 푼 한 푼을 아끼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오늘날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부자는 자산과 투자물을 극히 조심스럽게 관리하는 데 반해, 그만큼 잘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빚을 내서 정말로 필요하지도 않은 자동차와 TV를 산다.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 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많은 사람이 이런 과정을 ‘자연 파괴’라 부른다. 하지만 사실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변형이다. 자연은 파괴되지 않는다. 6,500만 년 전, 소행성이 공룡을 쓸어버렸지만, 그럼으로써 포유류가 번성할 길이 열렸다. 오늘날 인류는 많은 종을 멸종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조차 멸종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매우 잘 버티고 있는 생물들도 있다. 가령 들쥐와 바퀴벌레는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산업혁명은 시간표와 조립 라인을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틀로 변화시켰다. 공장이 자신의 시간표를 인간들의 행동에 강요한 직후부터 학교 역시 정확한 시간표를 채택했으며, 병원과 정부기관, 식품점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조립 라인과 기계가 없는 장소에서도 시간표가 왕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BBC 뉴스는 나치 점령하의 유럽에 방송을 내보냈다. 모든 뉴스 프로그램은 첫머리에 영국 국회의사당 시계탑의 시계 소리를 생방송으로 들려주었다. 이것은 자유를 상징하는 마법의 소리였다.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들은 생방송에 나오는 딩동 소리의 톤이 날씨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를 토대로 런던의 기상상황을 파악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정보는 독일 공군에게 귀중한 도움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그 유명한 시계 소리를 녹음 방송으로 바꿨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런 시계들을 본다. 우리가 하는 일 거의 대부분이 제시간에 이뤄져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명종은 우리를 오전 7시에 깨우고, 우리는 냉동 베이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정확히 50초 동안 가열하며, 칫솔질은 전동칫솔에서 알림음이 울릴 때까지 정확히 3분간 한다. 7시 40분 전철을 타고 직장으로 향하고, 헬스클럽 러닝머신이 30분이 경과했다는 알림음을 울릴 때까지 뛴다. 좋아하는 쇼를 보기 위해 오후 7시 정각에 TV 앞에 앉은 뒤, 미리 정해진 정확한 순간에 나오는 초당 1천 달러짜리 광고로 TV 시청을 방해받고, 결국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모든 걱정을 털어놓는데, 의사는 우리의 수다를 정확히 50분으로 제한한다. 오늘날 표준화된 한 회 진료시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마침내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한 나라가 국가 시간을 채택하고 국민들에게 현지 시각이나 해가 뜨고 지는 주기 대신에 시계에 맞춰 살기를 강요한 것이다.
국가와 시장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은 말했다. “개인이 되어라. 누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라. 부모의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다. 네게 맞는 직업을 택하라. 그 때문에 공동체의 연장자가 눈살을 찌푸리더라도. 어디가 되었든 네가 원하는 곳에서 살아라. 그 때문에 가족 만찬에 매주 참석할 수 없게 되더라도. 당신은 더 이상 가족이나 공동체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우리, 즉 국가와 시장이 당신을 돌볼 것이다. 식량과 주거, 교육과 의료, 복지와 직업을 제공할 것이다. 연금과 보험을 제공하고 당신을 보호해줄 것이다.”
국가는 상상의 존재라는 자신의 속성을 숨기려 최선을 다한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이 자연적이며 영원한 실체라고, 어떤 시원적 시기에 모국의 흙과 사람들의 피가 섞여서 창조된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보통 과장된 것이다. 오랜 옛날에도 민족은 존재했지만 그 중요성은 오늘날보다 훨씬 적었다. 국가의 중요성이 오늘날보다 훨씬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은 아바스 왕조 칼리프의 지위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유산을 채택했으며, 자신의 정예 기갑부대 하나에 함무라비 사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라크가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존재로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밀가루와 오일, 설탕으로 케이크를 굽는다고 하자. 그 모든 재료는 지난 2년간 부엌 옆 창고방에 들어 있던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케이크 자체가 2년 된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 2세기 동안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그런 나머지 사회질서는 동적이고 가변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그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로 존재한다. 현대의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는 1789년(프랑스 혁명), 1848년(유럽의 연쇄적 민주화 혁명), 혹은 1917년(러시아 혁명)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은 모든 해가 혁명적이다. 요즘은 심지어 30세밖에 되지 않은 사람도 십대를 향해 “내가 어렸을 때는 세상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어”라고 말할 수 있다. 십대는 그 말을 믿지 않겠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예컨대 인터넷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90년 초반에 이르러서였다.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다.
1945년 영국은 지구의 4분의 1을 지배했다. 그로부터 30년 뒤, 그 지배권은 몇 안 되는 작은 섬들에 한정되었다. 그사이 영국은 대부분의 식민지에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철수했다. 말라야나 케냐처럼 영국이 무력으로 버티기를 시도한 지역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제국의 종말을 한숨과 함께 받아들였을지언정 성질을 부리지는 않았다. 권력을 유지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매끄럽게 넘겨주는 데 힘을 쏟았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주의에 수많은 칭송이 바쳐지고 있지만, 적어도 그 칭송 중 일부는 대영제국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인도인들은 오랫동안 격렬하게 폭력적으로 저항했지만, 영국의 통치가 종식될 때 델리나 캘커타의 거리에서 영국군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제국의 자리는 많은 독립국들이 차지했다. 그 대부분은 이후 안정적인 국경선을 유지했으며 이웃나라와 대체로 평화를 유지하며 살았다. 물론 위협을 느낀 대영제국의 손에 사망한 사람은 수만 명에 이르고, 제국이 여러 분쟁지역에서 철수하는 바람에 민족 분쟁이 분출해 수십만 명이 희생되기도 했다(특히 인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역사적 평균과 비교하면, 영국의 철수는 평화와 질서의 모범이었다.
우리 시대는 평화를 사랑하는 엘리트가 세계를 지배하는 역사상 최초의 시대다. 정치인, 사업가, 지식인, 예술가 등은 진심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는 악이라고 본다.
우리는 다른 모든 동물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 컨베이어 벨트의 병아리의 희생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이 산업적 착취체제에 희생되었으며, 그 잔인성은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전대미문이었다. 만일 우리가 동물권리 운동가들의 주장을 10분의 1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현대의 기업농은 역사상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할 때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의 행복만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만일 당신이 5천 년 전의 어느 마을에 사는 18세 젊은이라면, 아마도 스스로 외모가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을에 남자라고는 50명밖에 안 되고, 대부분은 늙었거나 얼굴에 상처나 주름이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아직 어린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오늘날의 십대 청소년이라면, 스스로 부적격자라고 느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설사 학교에서 만나는 다른 애들이 못생겼다 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은 그애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TV나 페이스북, 대형 광고판에서 매일 보는 영화배우, 운동선수, 슈퍼모델과 비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3세계의 불만은 단지 가난이나 질병, 부패나 정치적 압제뿐 아니라 제1세계의 규범에 노출된 탓이기도 하지 않을까? 평균적인 이집트인이 기아나 질병, 폭력으로 사망할 확률은 람세스 2세나 클레오파트라의 치하에서보다 호스니 무바라크의 치하에서 훨씬 더 낮다. 대부분의 이집트인에게 물질적 조건이 이토록 좋았던 시대는 또 없었다. 그렇다면 2011년 이들은 자신들의 행운에 감사하며 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어야 하겠지만, 사실 그들은 무바라크를 축출하기 위해 격렬하게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자신을 파라오 치하의 선조들과 비교한 게 아니라 동시대 부유한 서방국가 사람들과 비교했기 때문이다.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 다른 모든 정신적 상태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행복도 월급이나 사회관계, 정치적 권리 같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신경, 뉴런, 시냅스 그리고 세로토닌·도파민·옥시토신 등의 다양한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
니체가 표현한 대로, 만일 당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일이든 견뎌낼 수 있다. 의미 있는 삶은 한창 고난을 겪는 와중이더라도 지극히 행복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의미 없는 삶은 아무리 안락할지라도 끔찍한 시련이다.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인간의 주관성을 그리워하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0억 년이 자연선택의 기간이었다면, 이제 지적인 설계가 지배하는 우주적인 새 시대가 열리려 하고 있다. 알바는 그 시대의 새벽을 상징하는 존재다. 그때가 도래하면, 그 이전의 인류사 전체는 생명이라는 게임에 혁명을 일으킨 실험 및 견습 과정이었다고 뒤늦게 재해석될 것이다.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별반 중요치 않은 유인원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변화했다. 이 혁명에는 생리기능의 변화는 물론이요, 사피엔스의 뇌 크기나 외부 형태에도 뚜렷한 변화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뇌 내부 구조의 작은 변화 이상은 관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약간의 추가적 변화만 있으면, 제2차 인지혁명의 불이 붙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의식이 창조되고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로 바뀔 수도 있다. 우리가 아직 이를 달성하기 위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로 하여금 초인간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막는 극복할 수 없는 기술적 장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된 장애는 윤리적, 정치적 반대이다. 인간에 대한 연구 속도가 느려진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주장이 아무리 그럴싸하다 해도, 그것으로 다음 단계의 발전을 오랫동안 지체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발전에 인간의 수명을 무한히 연장하고, 불치병을 정복하며, 우리의 인지적 정서적 능력을 향상시킬 성패가 달려 있다면 특히 그렇다. 우리가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했는데 그 약이 건강한 사람의 기억력을 극적으로 증진시키는 부수효과가 있다면 어떨까? 누가 그와 관련된 연구를 중단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치료제가 개발되었을 때 그 약을 알츠하이머 환자만 사용하도록 하고 건강한 사람은 이를 복용해 천재적 기억력을 얻지 못하도록 강제할 수 있을까? 어떤 법 집행기관이 그럴 수 있을까? 생명공학이 네안데르탈인을 정말 부활시킬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막을 내리게 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우리가 우리의 유전자를 주물럭거린다고 해서 반드시 멸종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이상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게 될 가능성은 있다.
물리학자들은 빅뱅을 특이점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알려진 모든 자연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지점이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빅뱅 ‘이전에’ 무엇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 — 나, 너, 남자, 여자, 사랑, 미움 — 이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 말이다.